처녀 조공과 영은문
영은문은 중국 사신을 맞기위해 만들어진 문으로 현재의 독립문 자리에 있었다. 중국의 조공국이 되면서부터 여러가지 치욕적인 일을 감당해야 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처녀 조공이다. 명나라 사신들이 조공의 하나로 조선의 처녀들을 중국으로 끌고갈 때 영은문에서 부모 자식간에 작별을 했다 한다. 이때 끌려간 조공녀들은 황후의 시녀가 되거나 귀족들의 첩이 되어 성적 노리개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태종 8년(1408) 명나라 칙사 황엄의 조공녀에 대한 언행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황엄은 선발되어 있는 처녀들의 미모가 맘에들지 않아 화가 나 있었다. 이 날 황엄이 화를 낸 것은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공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조선 처녀들의 자세 때문에 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평성군(平城君) 조견의 딸은 마치 중풍에 걸린 사람처럼 입이 돌아간 모양을 하고 이조참의 김천석의 딸은 중풍에 든 사람마냥 머리를 마구 흔들어대고 전 군자감(軍資監) 이운로의 딸은 무슨 병에 걸린 사람처럼 다리를 절둑 거렸다. 이일로 이들의 부모들은 파직되거나 귀양을 갔다. 이토록 지속되는 처녀 조공은 민초들의 아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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